충남·대전 행정통합이 주민 동의와 재정·권한 이양 등 현실적인 과제에 부딪혀 2026년 출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원점에서 재논의되고 있습니다. 행정구역 통합이 실질적인 지역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구상을 넘어 주민 공감대 형성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따라 먼저 통합을 경험한 일본과 대만의 사례를 통해 시행착오를 분석하고, 지역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성공적인 통합 조건을 모색해야 합니다.
[글 싣는 순서]
① 멈춰 선 충남·대전 통합… 20여 년 먼저 합친 일본의 교훈
② [르포] 충남·대전 통합의 미래는… 27년 먼저 합친 도시를 가다
③ 두 번의 주민투표도 부결… 오사카가 충남·대전 통합에 남긴 교훈
④ 먼저 합친 가오슝 16년… 충남·대전 통합에 던지는 질문
⑤ [르포] 충남·대전 통합 청사는 어디로… 가오슝 16년의 선택
⑥ 두 번의 실패는 없어야… 충남·대전 통합, 이제는 '이후'를 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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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놓고 방식과 명칭 등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1월 대전 유성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행정통합 유관단체 의견청취에 참석한 시민들이 추진배경과 주요쟁점에 대해 설명 듣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35년 넘게 따로 걸어온 두 지역을 다시 하나로 묶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24년 11월이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그해 11월 21일 행정통합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와 지방소멸에 대응하려면 개별 광역자치단체의 경계를 넘어설 새로운 행정체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민관협의체가 출범했고 특별법 마련 작업이 시작됐다.
목표는 단순히 지도 위 경계를 지우는 데 있지 않았다. 두 지역을 하나의 경제·생활권으로 묶어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재정을 넘겨받아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광역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대전의 과학기술과 충남의 산업·제조 기반을 결합한다는 청사진도 제시됐다.
논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2025년 7월 민관협의체가 '대전충남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수도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최종안을 확정했다. 특별시 설치와 운영뿐 아니라 자치권 강화, 경제과학수도 조성, 주민 삶의 질 향상 등을 담은 296개 조항 규모였다. 같은 해 9월 30일 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행정통합은 현실화를 눈앞에 둔 듯했다. 당초 목표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선출하고 7월 통합자치단체를 출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도를 내던 통합 논의는 결국 첫 번째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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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2월 대전시의회 앞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주민 동의가 대표적이다. 대전시가 올해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행정통합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41.5%로 찬성 33.7%보다 높았다. 특히 시민 71.6%는 행정통합에 주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대 이유 역시 '지역 간 갈등 심화' 29.4%,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부족' 26.7%, '대전 정체성 훼손' 15.7% 등이었다.
통합의 실익을 둘러싼 문제도 불거졌다. 대전시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 논의된 특별법안의 재정 자율권과 사무 권한 이양 등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주민투표를 행정안전부에 공식 요청했다. 행정구역만 하나로 묶고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애초 기대했던 '규모의 경제'와 지방분권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문제였다.
결국 2026년 7월 통합자치단체 출범 계획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대전시는 지난 7월 '대전충남행정통합준비단'을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4급 팀 단위로 축소했다. 대신 충청권 경제공동체 구상을 담당할 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다만 행정통합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양 지역 정치권에서도 주민 공감대 형성과 절차를 거쳐 통합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 나오고 있다.
첫 시도가 남긴 질문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행정구역을 합치면 정말 행정 비용이 줄어드는가. 규모가 커지면 재정은 튼튼해지는가. 통합에 따른 혜택은 중심지역뿐 아니라 주변지역까지 돌아가는가.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서로 다른 지방정부 아래 살아온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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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랜드마크인 글리코상. (사진= 김지윤 기자) |
1990년대 말 일본 지방정부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지방분권으로 기초자치단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늘어났다. 작은 지자체가 각각 행정조직을 유지하면서 복지와 기반시설, 각종 주민 서비스를 감당하는 데에도 한계가 나타났다.
일본 정부가 선택한 해법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헤이세이 대합병'이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적인 시정촌 합병이 진행되면서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지도는 크게 바뀌었다.
합병 전 3232개였던 시정촌은 1727개까지 줄었다. 합병을 경험한 지자체의 평균 인구는 2만 6261명에서 9만 2339명으로, 평균 면적은 101㎢에서 358.3㎢로 커졌다. 인구 1만 명 미만의 소규모 지자체 비율도 크게 감소했다.
당시 일본이 내세운 명분은 지금 충남·대전에서 거론되는 논리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행·재정 기반을 강화하고 행정을 효율화해 지방정부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여 년이 흐른 지금 성적표는 어떨까.
일본 재무성에서 올해 초 다뤄진 '헤이세이 시정촌 합병의 성과와 과제' 자료와 관련 연구들을 종합하면 결과는 단순하지 않다. 합병 지자체의 재정 자립성은 일정 부분 높아졌고 토목·건축 등 전문직 공무원과 의료인력 등 행정서비스를 뒷받침하는 인적 기반도 유지·강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반면 '합치면 곧바로 돈이 절약된다'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합병 직후에는 새로운 행정체제를 만드는 비용이 발생했고 일본 정부가 합병을 유도하기 위해 제공한 재정지원과 합병특례채 등도 지출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장기간이 흐르면서 세출을 억제하는 흐름이 확인됐지만, 합병 효과가 재정에 온전히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행정구역을 합치는 행위 자체와 통합의 성과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덩치는 커졌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중심지역과 주변지역의 격차, 행정서비스 접근성, 재정 부담, 주민의 정체성과 같은 문제는 통합 이후에도 각 지역의 숙제로 남았다. 일본 내에서도 합병이 주변지역의 인구 감소를 심화시켰는지를 놓고 연구 결과가 엇갈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통합 여부'를 넘어 통합 이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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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세이 대합병 초기 단바사사야마시 전경. (사진= 단바 사사야마시 시청) |
일본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과 한국의 지방자치제도가 같지 않고, 헤이세이 대합병은 주로 기초자치단체 간 통합이라는 점에서 대전과 충남의 광역단체 통합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일본의 경험을 충남·대전에 그대로 이식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먼저 통합을 경험했다는 시간은 무시하기 어렵다. 통합을 결정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났고, 통합의 효과와 부작용을 실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는 충남·대전이 현재 마주한 질문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먼저 경험한 지역들이 있다.
오사카에서는 행정체제 개편을 둘러싸고 주민에게 직접 뜻을 물었다.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주민투표가 실시됐지만 모두 근소한 차이로 부결됐다. 행정 효율성과 도시 경쟁력이라는 명분만큼 주민의 이해와 동의를 확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효고현 단바사사야마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1999년 사사야마정·니시키정·단난정·이마다정 등 4개 정이 합쳐져 사사야마시가 됐고, 2019년 현재의 단바사사야마시로 이름을 바꿨다. 합병 이후 각종 사업과 재정지원이 이어졌지만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강도 높은 재정개혁도 경험했다. 통합 이후 중심부와 주변지역의 변화 역시 27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본보가 일본 현지에서 확인하려는 것도 '통합해야 한다' 또는 '통합하면 안 된다'는 정답이 아니다. 두 차례 주민투표 끝에 행정체제 개편을 멈춘 오사카와 실제 합병 이후 27년을 살아온 단바사사야마를 통해 통합 전에는 무엇을 결정해야 하고, 통합 이후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한 차례 멈춰 선 충남·대전 행정통합이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먼저 합쳐보고, 실패하고, 다시 고쳐온 도시들의 경험은 이제 충남·대전이 다시 통합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살펴봐야 할 '선행 답안지'다.
김지윤·이혜린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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