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0년대 대전의 대표적 소풍 명소였던 '만수원'과 '신신농장' 등 이제는 사라진 공간들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의 순수한 추억을 반추했습니다. 소풍 도시락과 수건돌리기에 얽힌 일화부터 중앙로의 옛 상가와 서점까지, 저자는 도시 개발로 변해버린 대전의 옛 풍경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장소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공간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저자는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을 스스로 지우지 않고 끝까지 간직하겠다는 다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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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옛 만수원 풍경을 AI로 재현한 이미지. <사진제공=대전시 홍보담당관실 '대전찰칵'> |
1983년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다. 매사에 수줍고 제대로 말을 잘하지 못하던 나는 소풍을 가는 것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일단 소풍 자리부터가 불편했다. 소풍을 가려면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노래도 부르고, 쾌활한 성격도 갖춰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반에 50명도 넘는 아이들, 그렇게 두세 반의 아이들이 모여 만원버스를 타고 소풍 장소로 향했다. 그 불편함을 뒤로 하고 소풍 하면 역시 김밥이었다. 내가 싼 김밥보다는 남이 싸온 김밥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차이였을 텐데, 그때는 친구가 싸온 김밥이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보온통에 따뜻한 물까지 담아 컵라면을 가져왔다. 당시 컵라면을 소풍에 가져온다는 것은 비교적 가정이 풍족한 아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김밥을 맛있게 먹고 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놀이가 있었는데 바로 '수건돌리기'였다. 짝꿍만 바라보던 나에게 수건을 들고 원을 돌다가, 평소 먼발치에서 관심 있게 바라보던 옆 반 이성 친구에게 수건을 놓고 뛰어오게 하던 그 놀이는 어쩌면 어린 시절의 여린 이성교제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건돌리기가 끝나고 서로 친해졌으면 좋았을 텐데, 수줍음 많던 나는 결국 특별한 인연 하나 만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그 기억들이 나의 마음을 후펴파고 새록새록 기억나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 중 먼저 생각나는 곳이 지금의 건양대학교 병원이 자리잡고 있는 옛 '만수원' 이다.
대전 가수원동에 있던 만수원(萬樹園)은 이름 그대로 만가지의 수많은 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드넓은 부지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들어차 있어 경치가 아름다웠고, 봄과 가을 소풍은 물론 어린이날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도 있었고,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동물원도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만수원은 무엇보다 '소풍의 장소'였다. 하지만 만수원은 1995년 건양대학교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공간이 병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나에게는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도 건양대학교병원에는 작은 '힐링숲'울 조성했다. 아주 조금이나마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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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옛 신신농장 이미지. <사진제공=대전시 홍보담당관실 '대전찰칵'> |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르는 곳이 있다. 대전 월평동 부근에 한 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언덕. 그곳에는 신신농장이 있었다. 신신농장 역시 만수원 못지않게 다양한 식물과 자연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내가 그곳에 소풍을 갔던 기억은 아마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신신농장에 가면 이상하게 실온보다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비닐하우스를 제대로 경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식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대열에서 이탈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김밥 먹을 자리를 구하러 월평공원 언덕에 올라가면 유성 쪽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맑은 공기와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어린 마음에도 나름의 '힐링'을 했다. 결혼식장으로도 유명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신신농장 역시 2000년대 초반 매각되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의 월평공원 언덕은 아직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신신농장의 사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최근 대전의 옛날 기억을 담은 많은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다시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던 대전의 옛 모습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40여 년 전 중앙로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나에게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말 그대로 놀이터였다. 중앙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던 떡볶이집과 오락실 거리, 그 가운데서 대훈서점과 건너편 산업은행 건물 옆 동국서림의 기억도 생생하다. 대전 제일의 시장이었던 중앙시장, 수기통장을 들고 돈을 찾으러 이리저리 헤매다 찾아갔던 충청은행과 제일은행 건물까지, 오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기억들이 내 머리를 쿡쿡 건드린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픈 오늘, 제발 살아있는 한 기억을 스스로 지우고 싶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지금이다.
양홍석 대전시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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