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출발점은 다섯 살 무렵, 가양동이다. 가양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비래리(현 비래동)와 매우 가까웠고, 서쪽으로는 송촌, 동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우암사적공원이 자리 잡은 일명 더퍼리 길목이 나왔다. 우리 집은 그 언덕길목의 오른편 골목에 있었다. 당시 골목길 하면 늘 동네 친구들과 주먹야구와 축구, 딱지치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매번 싸우고 얻어터지고, 다시 화해하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따뜻했던 우리 동네는 어느 날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담벼락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나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담벼락이 무너진 원인을 갖고 외교 관계 단절하듯 동네 이웃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며 한바탕 가족 간 대항전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예전에 금은방 거리로 유명했던 목척교 부근 중동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다. 가게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저녁때 집으로 돌아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곳이 있었다. 이곳이 보이면 이제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이다. 삼성동 굴다리, 성남동 사거리, 가양동 사거리를 지나 용전동 방향을 앞두고 커다랗게 솟아 있던 상징물. 바로 '대전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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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탑 전경(1980년대) <출처: 대전시 '대전찰칵' 제공> |
하지만 대전탑은 이제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초반, 급속한 교통량 증가로 대전탑 로터리가 대전 동부지역 교통 지체의 원인이 되면서 결국 철거되고 말았다. 지금은 동부네거리 한편의 작은 조형물로만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대전탑 주변의 조형물들은 대전나들목 부근으로 이전되어 보전되고 있다.
대전탑 주변에는 지금도 당시의 흔적을 간직한 옛 건물들이 있다. 해태제과 건물은 무늬만 보아도 아이스크림과 과자가 바로 먹고 싶다. 대전탑을 지나 가양동 사거리와 자양동 방향으로 가면 옛 롯데 건물과 현대자동차서비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길은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세천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오갔던 길에 우뚝 서 있던 대전탑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당시에는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불편한 상징물이기도 했지만 지금 대전탑이 없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매우 아쉽다. 공허함이 사라진 자리에, 오히려 그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이 남은 것 말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건물도 사라지고, 갑자기 길의 이름도 바뀌고, 우리가 매일같이 오가던 풍경도 어느 날 무슨 이유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곳에서 뛰어놀고, 넘어지고, 혼나고, 웃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추억의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등긁이 같은 옛 대전의 사진들이 앞으로 우리 대전시민들과 함께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낡은 건물 한 장의 사진일 뿐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40년 전 그 길을 뛰어가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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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탑 여성상. <대전시 대전찰칵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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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탑 동상. <대전시 대전찰칵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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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탑 AI로 생성한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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