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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날로그 공백을 채우는 법, Z세대가 가방을 바꾼 이유

김기현 국립산림치유원장

고미선 기자

고미선 기자

  • 승인 2026-11-03 08:58

신문게재 2026-11-03 18면

김기현 산림치유원장
김기현 국립산림치유원장
최근 해외 패션·라이프스타일 시장에서 이른바 '아날로그 백'이 화제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 낱말 퍼즐, 뜨개질 도구, 스케치북을 담아 다니며 의도적으로 오프라인 시간을 만드는 가방이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트렌드는 국내에서도 2026년 새해를 맞아 디지털 디톡스를 결심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조명받았다.

이 흐름을 처음 제안한 미국의 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삶의 마지막 순간 스마트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 가장 두렵다는 생각에서 아날로그 백을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아날로그 문화의 부활을 다룬 책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이 가방을 집중력을 위한 도구 상자에 비유하며, 휴대폰이 채워주던 자리를 대신할 구체적인 대안이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른바 '아날로그 공백'이라 부를 만한 개념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 찾아오는 심심함과 어색함, 즉 그 공백을 감당할 무언가가 없다면 사람은 금세 다시 화면으로 손을 뻗는다. 아날로그 백이 인기를 얻은 이유도 그 공백을 대체할 구체적인 도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는 과학적 근거도 있다. 2017년 미국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애드리언 워드 교수팀이 소비자 연구협회 저널에 발표한 실험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곳에 놓아두기만 해도 사람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참가자들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성공적으로 참아낸 경우에도 이러한 인지 저하는 그대로 나타났다.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시야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뇌 일부가 그 존재를 의식하는 데 쓰인다는 뜻이다. 아날로그 백이 스마트폰을 아예 가방 깊숙이 넣어두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가방 하나로 채울 수 있는 공백에는 한계가 있다. 카페에 앉아 뜨개질하거나 책을 읽는 한두 시간은 의미 있는 실천이지만, 창밖에는 여전히 도시의 소음과 광고판이 존재한다. 잠깐의 몰입은 가능해도 그 몰입을 방해하는 자극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 이상 이어지는 진짜 넓은 공백은 결국 환경 자체의 전환이 있어야 채워진다.

숲은 그 공백을 가장 자연스럽게 채우는 장소다. 국립산림치유원의 산책로와 프로그램들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은 하루를 실제로 경험하게 한다. 아날로그 백을 들고 카페에 앉는 대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같은 원리의 공백이 채워진다.

가방 속 도구가 손과 눈을 잠시 붙잡아 주는 임시방편이라면, 숲은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들어 공백을 훨씬 오래, 훨씬 깊게 채운다. 걷는 동안 시선은 계속 바뀌는 풍경을 따라가고, 발걸음은 지형에 맞춰 조정되며, 굳이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아도 무료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날로그 백이 도심 속 작은 실천이라면, 산림치유원은 그 실천을 온전한 하루로 확장하는 공간이다.



/김기현 국립산림치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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