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멈춰 선 충남·대전 통합… 20여 년 먼저 합친 일본의 교훈
② [르포] 충남·대전 통합의 미래는… 27년 먼저 합친 도시를 가다
③ 두 번의 주민투표도 부결… 오사카가 충남·대전 통합에 남긴 교훈
④ 먼저 합친 가오슝 16년… 충남·대전 통합에 던지는 질문
⑤ [르포] 충남·대전 통합 청사는 어디로… 가오슝 16년의 선택
⑥ 두 번의 실패는 없어야… 충남·대전 통합, 이제는 '이후'를 준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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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가오슝 거리. (사진= 김지윤 기자) |
경계가 사라진 것은 2010년 12월이다. 대만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시와 현이 합쳐지면서 인구 약 277만 명, 면적 2946㎢의 새로운 직할시가 출범했다. 기존 가오슝시보다 행정구역이 18배 이상 넓어졌다. 이미 교통과 산업, 소비 활동에서 연결된 지역을 하나의 광역정부 아래 묶은 것이다.
충남·대전 행정통합도 비슷한 명분을 내세운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대전의 연구개발 기능과 충남의 산업 기반, 교통과 생활권은 긴밀히 이어져 있다. 이를 하나의 광역정책으로 조정하고 수도권에 대응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가오슝의 지난 16년은 통합의 성패가 경계를 허무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나의 생활권, 달랐던 행정 경계=가오슝 통합의 출발점은 실제 생활권과 행정구역 사이의 간극이었다. 기존 시와 현은 같은 도시권에서 교통과 산업, 환경 문제를 공유하면서도 도시계획과 개발사업은 따로 추진해야 했다. 통합은 이처럼 나뉜 정책 결정 구조를 광역 단위로 조정할 기반을 마련했다.
대만 정부는 당시 가오슝뿐 아니라 타이중과 타이난 등에서도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했다. 기존 도시와 주변 현을 합쳐 직할시로 재편한 것이다. 통합 이후 가오슝은 항만과 공업지역, 농어촌을 아우르는 교통·산업·환경정책을 하나의 지방정부에서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충남·대전과는 출발 조건부터 다르다. 충남과 대전은 1989년 분리된 뒤 각각 독립된 광역자치단체로 운영돼 왔다. 통합을 위해서는 두 광역정부의 조직과 재정, 지방의회는 물론 충남의 시·군과 대전의 자치구를 포괄하는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대전 도심과 천안·아산 도시권, 서해안 산업 벨트, 내륙 농촌과 어촌의 생활권도 하나로 겹치지 않는다. 단순히 규모를 키운다고 모든 지역에 같은 효과가 돌아가는 구조는 아니다.
통합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도 이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가오슝은 기존 시와 현의 행정 경계를 없애 도시권 전체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면, 충남·대전은 여러 산업·생활권을 가진 두 광역자치단체를 결합하는 작업이다. 대전과 가까운 충남 일부 지역에서 기대하는 교통·생활 편익이 서해안이나 농촌 주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의 효과를 광역 단위의 평균 수치로만 제시해서는 지역별 이해득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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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가오슝 쓰웨이 행정센터. (사진= 김지윤 기자) |
대만의 광역통합 관련 연구에서는 직할시 개편 이후 운용 가능한 자체재원 비중은 개선됐지만, 지방정부가 직접 조달하는 재원의 비중이 뚜렷하게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경제개발 분야의 지출 비중도 일관된 확대가 확인되지 않았다.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재원을 확보하는 일과 지역경제가 지속적인 세입을 만들어내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충남·대전 역시 재정특례 확보를 통합의 최종 성과로 삼을 수는 없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늘더라도 그 재원이 산업과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원 종료 이후 재정 부담이 남을 수 있다. 두 지역이 각각 추진해 온 사업을 어떻게 정리하고 중복 투자를 줄일 것인지, 확보한 예산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지도 따져야 한다. 통합정부의 예산 총액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으로 지역의 재정 체력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느냐다.
통합 초기에는 기존 조직과 행정시스템을 조정하는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부서별 기능과 사업을 통합하고 서로 다른 예산 편성 방식을 조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정부 지원을 전제로 한 사업을 먼저 확대했다가 이후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부담은 통합지역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재정특례의 규모와 함께 지원 기간, 종료 이후의 세입 전망, 지역별 투자 우선순위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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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타이중 기차역. (사진= 김지윤 기자) |
기존 행정 거점을 유지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옛 가오슝시청은 쓰웨이행정센터, 옛 가오슝현청은 펑산행정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통합정부를 출범시키면서도 기존 두 지역의 행정 기능을 모두 한곳으로 옮기지는 않은 것이다. 행정체제 개편 이후 주민 접근성과 지역별 기능 배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충남·대전에서도 청사 위치를 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산업과 농정, 과학기술, 균형발전 기능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기존 시·군과 자치구에는 어떤 권한을 남길 것인지가 그것이다. 대전의 연구개발 역량과 천안·아산의 제조업, 서해안 항만과 산업시설, 농어촌의 행정수요는 성격이 다르다. 주요 기관과 투자가 한쪽에 집중된다면 통합정부의 규모가 커져도 일부 주민에게는 오히려 거리가 멀어진 행정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균형발전은 청사를 어느 지역에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교통망 확충이나 기업 유치 같은 대규모 사업뿐 아니라 보건·복지, 농업 지원, 주민 민원 처리처럼 일상적인 행정서비스도 지역마다 수요가 다르다. 통합정부의 정책 결정 권한이 커질수록 기초자치단체가 지역의 사정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어떻게 보장할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충남·대전이 미리 그려야 할 통합 이후=대만의 통합 방식을 충남·대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 관계도, 지역의 역사와 공간 구조도 다르다. 가오슝에서 나타난 변화가 충남·대전에서도 같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가오슝의 경험은 통합의 당위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광역정책을 조정할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은 시작이다. 그 안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도시와 농어촌의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정하는 일은 통합 이후에도 계속된다.
충남·대전 행정통합 논의 역시 통합정부의 인구와 면적, 예산이 얼마나 커지는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확보한 권한과 재정을 어디에 쓰고, 지역별 행정서비스를 어떻게 유지하며, 투자와 성장의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 구체적인 설계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 16년 먼저 경계를 허문 가오슝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통합한 뒤 주민들의 삶은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대만 가오슝=김지윤·이혜린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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